'"이 책 또 읽어?"
처음엔 저도 조금 신기했어요.
분명 어제도 읽었고, 오늘도 읽었는데 또 같은 책을 가져오는 거예요.
"다른 책도 많은데 왜 하필 또 이 책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아이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게 아니라 매번 다르게 읽고 있더라고요.
어제는 자동차만 보던 아이가 오늘은 창문 밖에 그려진 고양이를 발견하고, 지난번에는 그냥 넘겼던 페이지에서 갑자기 한참을 웃기도 했어요.
아이들에게 익숙함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됩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미 알고 있으니, 다음에는 조금 더 여유 있게 그림을 보고, 등장인물의 표정을 보고, 작은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는 거죠. 마치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들을수록 새로운 악기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요.
그리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일은 아이에게 '예측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다는 건 아이에게 꽤 큰 안정감을 줍니다. 그래서 낯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날일수록, 익숙한 그림책을 찾는 것 같아요. 매일 매일이 새로운 것들로 가득차 있는 아이들에게는 익숙함을 주는 책에게 자꾸 돌아가는 것 같아요.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옷장은 가득한데 자꾸 손이 가는 옷이 있고, 많고 많은 영화 중에서도 가끔은 이미 결말을 다 아는 영화를 다시 틀어 보기도 하잖아요. 아이들에게 그림책도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익숙해서 편안하고, 알지만 또 보고 싶은 것. 그래서 다음에 아이가 같은 그림책을 들고 온다면, "또 이 책이야?" 대신 "오늘은 어떤 걸 발견할까?" 하는 마음으로 함께 펼쳐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거예요.
어쩌면 같은 그림책을 읽는 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시간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아이를 만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엄마 마음은 또 다르죠.
'좋아, 이 책 좋은 건 알겠는데… 다른 책도 좀 읽어보면 좋을 텐데.'
물론, 저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억지로 "오늘은 다른 책 읽자." 하기보다는, 이렇게 말해봐요."이 책 재밌지? 그럼 엄마가 좋아하는 책도 하나 같이 읽어볼까?"하며 새로운 그림책을 끼워 팝니다(?). 신기하게도 한 번 같이 읽은 책은 다음날 아이가 먼저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요. 어제까지는 낯선 책이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익숙한 그림책'이 되는 거죠.
또 제가 자주 하는 방법은 비슷한 그림책을 옆에 슬쩍 놓아두는 것이에요. 자동차 그림책를 좋아한다면 자동차가 나오는 다른 그림책을, 동물을 좋아한다면 동물이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를 함께 두는 거죠. 아이는 새로운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기보다, 좋아하는 세상을 조금 더 넓혀가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가끔은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꺼내 보기도 해요."이 책 만든 사람이 이 책도 만들었대."이 한마디면 의외로 쉽게 관심을 갖는 아이들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효과가 좋았던 건, 제가 먼저 재미있어하는 모습이었어요."엄마 이 책 너무 궁금한데?""엄마는 이 장면이 너무 웃기더라." 아이는 생각보다 엄마의 호기심을 잘 따라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그림책을 권한다기보다, 같이 궁금해해 보려고 해요. 익숙한 그림책 한 권은 새로운 그림책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아이가 그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그림책 책장도, 아이의 세계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