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와 그림책을 읽다 보면 자주 보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아직 왼쪽 페이지를 읽고 있는데, 아이의 눈은 이미 오른쪽 페이지 맨 아래에 가 있습니다.
'아니, 벌써 거길 본다고?'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어요.결말부터 보면 재미없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기왕이면 제가 읽는 속도에 맞춰 같이 봐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여기 봐." 하며 글을 손가락으로 짚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아이를 보는데, 아이는 제 말을 안 듣는 게 아니었어요.귀는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눈은 그림 속을 한참 여행하고 있더라고요.저는 글을 읽느라 바빴는데 아이는 그 사이에 배경에 숨어 있는 친구를 찾고, 구석에 그려진 작은 표정을 발견하고, 다음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그걸 보고 조금 미안해졌어요. 저는 그림책을 '순서대로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이미 자기 방식으로 그림책을 읽고 있었던 거니까요.
그날 이후부터는 아이가 먼저 다음 장을 흘깃 먼저 보려고 해도 예전처럼 붙잡지 않습니다. 대신 "벌써 궁금해?" "다음엔 어떻게 될 것 같아?" 하고 웃으며 물어봐요. 그러면 아이는 자기가 본 걸 이야기합니다."여기서 넘어질 것 같아.", "이 친구 여기 숨어 있었어."가끔은 원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글을 읽습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그때 더 잘 들어요. 한 번 자기 방식대로 그림을 읽어본 뒤에 듣는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들리는 걸까요.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함께 이야기를 만드는 책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아이와 읽다 보니,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아이입니다. 아이도 그림책을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는 연습을 합니다.가끔은 제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 같은 날도 있습니다.그런 날이면 늘 같은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그림책을 가장 잘 읽는 사람은,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인지도 모르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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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그림책을 잘 읽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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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Picturebook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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